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 육군 (문단 편집) == 역사 == 육군의 뿌리는 여러 조직에서 찾을 수 있으며, [[미군정]]이 주도하여 설립된 [[조선국방경비대]]와 [[군사영어학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 등이 꼽힌다. 그러나 [[건군기]]의 장교 중 가장 숫자가 많았던 건 [[만주국]] [[만주군|육군]] 및 일본군 [[학병]] 간부 출신으로, 광복군을 모태로 하는 인식이 보급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초창기에 광복군 출신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이 없는 이유는 이러한 연유를 고려해야 한다. 정부 수립 후 초대 육군 총사령관은 미군정 당시 남조선국방경비대 총사령관을 역임한 중국군/광복군 계의 [[송호성(군인)|송호성]]이었으나 한국전 당시의 행적이 애매한 관계로 역사에서 지워진 까닭에 초대 육군총참모장인 [[이응준]]으로부터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일본 육군 대좌 출신의 초대 총참모장 이응준이 비록 그 출신 문제로 비판을 받는 면이 있으나 본인의 일제강점기 행적을 뉘우치고 근신하려던 점, 군사영어학교 개교 시 광복군 계열에 대한 인원을 배분하고 임정의 정통성을 읻기 위해 유동열을 설득하여 통위부장으로 위촉한 일 등은 재평가가 필요하다.] (다만 통위부장은 독립운동가인 [[유동열]]이 역임하였고 정부 수립 후 초대 국방부 장관은 독립운동가이자 광복군 참모장인 [[이범석]]이 역임하였으며 [[지청천]] 장군이 무임소장관으로 징병제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이 위안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육군의 초기 전차부대의 관련된 역사는 [[한국군 전차부대(한국전쟁)]] 문서 참조.) 건군의 주축 중 다수의 만주군 출신의 조선인 장교들 역시 해방 직후 광복군에 편입한 후[* 예로 들면 한국군의 대표적인 만주군 인맥인 [[신현준(군인)|신현준]]과 [[박정희]]는 광복군 제3지역대 소속으로 귀국했다.], 그 수많은 장교들이 개인 자격 등으로 귀국해서 광복군 출신 인재들을 주축으로 해서 한반도 내 난립하던 여러 군사조직의 해체 및 흡수 등으로 남조선국방경비대가 조직된 것이기 때문에 광복군이 전신이란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정부의 공식 입장은 이렇다. [[대한민국 정부]]의 명목상 전신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마찬가지로 [[한국광복군]] 또한 조선국방경비대와 같은 [[대한민국 국군]]의 전신으로 보는 것이 현재의 공식 입장이다.[* 육사의 졸업 영상을 참고하면, 문재인 정부의 기준으로 한국 육군은 광복군을 계승한 단체로 분류된다. 그러나 대한민국 육군 홈페이지에는 육군이 국방경비대를 그 기원으로 갖는다고 기재되어 있다는 점을 그 근거로 갖는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확인하면 재차 언급했듯 실제 뿌리는 '''미군정 주도로 여러 군사조직의 해체 및 인재의 흡수 및 모집 등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광복군 정통성이 명목상인 이유는 성분을 주도한 미군정이 한국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임정군인 한국광복군 인사들 역시 개인 자격으로 귀국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광복군 출신 인사들이 국방경비대로, 정계 등에 합류해 활동을 계속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그 수는 만주군 출신에 비해 극히 적었기에 군 내 영향은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상술한 광복군 소속으로 귀국한 만주군 장교들의 경우,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만주군 내에서의 조선인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대우 때문에 조선계 만주군 장교들 사이에선 [[일본 제국]]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찌르는 상황이었는데, 이때 먼저 만주군에서 탈영해 독립군에 가담했던 [[박승환(군인)|박승환]]이 만주군에 잔류한 나머지 조선인 장교들도 마저 포섭하려고 저들을 설득하자 앞서 말한 '''조선인 장교들도 탈영+독립군 합류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박정희]]를 포함한 여러 조선계 만주군 장교들은 독립군 세력과 자주 술자리를 갖는 등 그들과 접선했고 '''심지어 국내 진공 작전에 동참하려는 의사를 내비치기까지 했을 정도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일본 제국이 패망하며]] 국내 진공 작전이 물거품이 되고 독립운동을 해보기도 전에 독립당한(...) 조선계 만주군 장교들은 별 수 없이 일제와 싸워 보지도 않고 그냥 귀국하게 되었는데, 이때 '''저들과 교류하던 광복군 관계자들이 저들을 품으며 저들은 광복군 소속으로 귀국을 하게 된다.''' 즉 친일부역을 하긴 했어도 독립운동에 가담하겠단 의지를 내비쳤던 덕에 (어찌됐건) '만주군 장교'가 아닌 '광복군 장교'로서 귀국하는 혜택을 볼 수 있었던 것.[* 상당히 흥미로운 썰임에도 일반인들 사이에서의 인지도는 낮은 편인데, 박정희를 위시한 만주군 출신 장교들이 (어찌됐건 간에) 결국 독립운동을 해보지도 못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저 사실을 밝히지 않았단 주장도 있고, 반대로 어찌됐던간에 이들이 일제에 부역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의 체제경쟁과 개중의 몇몇은 후일 자신들이 정치적인 입장때문에 그냥 덮어버린 것이란 주장도 있다.] 사실 광복군 관계자들이 [[호구]]도 아니고 [[친일반민족행위자|어제까지 일제 부역하던 놈들]]을 그냥 품어줄 리도 없다. 광복군 입장에서도 저 만주군 장교들이 일제 패망 안 했어도 진짜 광복군에 가담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받아준 것이라 봐야 맞다. 정확히는 저들이 광복군 관계자들과 계속 접선하며 합류 의사를 꾸준히 내비쳤던 것이 크다고 봐야 할 듯하다. 즉 요약하자면 대한민국 육군 건군의 주축이 됐던 만주군 장교들은 (일제가 패망할 것임을 모르는 상태에서) 광복군에 가담하려는 의사를 분명히 내비쳤고, 광복군도 그것을 참작해서 일제 패망 이후 귀국할 때 저들을 '광복군 장교'로서 귀국할 수 있는 특혜를 주었고, 저들이 남조선국방경비대의 모체가 되었기 때문에 '''(어찌됐건) '광복군'이 대한민국 육군의 전신은 맞다는 얘기.'''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 '(만주군 출신) 광복군 장교'들이 독립운동가냐?고 하면 그건 틀린 말이다. 한편, 육군은 조선국방병비대를 기원으로 두고 있단 인식은 육사를 통해 이어졌고, 후일 일어난 홍범도 흉상 해체를 시작으로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지우는 사건이 일어난 것 때문에 이들이 타군에 비해 광복군을 기원으로 두는 인식이 부족한 편이란 주장도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실제로 해군은 해군의 아버지인 손원일 제독부터가 대를 이은 독립운동가였으며, 공군의 경우엔 미군식 교육을 받고 공군 참위부터 시작하란 미군정의 홀대를 두고 광복 이전의 계급을 모두 내려놓고 백의종군을 하면서 과거 청산의 의지를 보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